“베니스는 어떻게 지금의 베니스가 되었나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도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베니스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불립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석호(라구나) 한가운데 수로 위에 세워져 150개의 운하와 400개의 다리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미로의 도시이기도 하죠. 최상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뜻하는 ‘라 세레니시마(La Serenissima)’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8세기부터 1000년 동안 지속된 베니스 공화국의 찬란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1. 베니스의 과거와 현재
# 베니스의 과거
베니스는 567년 훈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석호 위에 셀 수 없는 말뚝을 박고 기초를 다져가며 그들만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간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7세기부터 지중해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12세기 무렵에는 아드리아해의 해상무역권을 장악해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닌 도시 국가가 되었으며, 그 부를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어요. 13세기에는 강력한 해상 공화국이 되었죠. 15~16세기에는 동방의 향신료, 후추, 면직물과 지중해 연안국의 밀, 포도, 올리브유, 소금 등을 교역하며 크게 번창했던 베니스는 피렌체와 더불어 르네상스 문화가 크게 발달했어요. 그러나 신대륙 발견 이후 점차 쇠락한 베니스 공화국은 18세기 후반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당한 후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됩니다.
# 베니스의 현재
현재는 118개 섬들이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된 거대한 수상 도시예요. 베니스를 다스렸던 세레니시마 가문의 유산들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관광 문화 유산을 이탈리아에 남겨주었죠. S자 형을 그리면서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길이 4km의 대운하 주변에는 과거 귀족과 상인들이 지었던 호화로운 고딕 양식의 저택들이 남아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마치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도시는 실제로 바다 위에 우뚝 서있답니다. 그 길을 따라 곤돌라가 미끄러지듯이 흐르고, 곤돌리에(곤돌라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의 노랫가락은 오늘도 베니스 곳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어요.
2. 18세기, 유럽 최대 환락의 도시 베니스
# 상업 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중세 말기, 서유럽 전역에서 베니스를 찾아온 관광객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베니스 관광이 아닌 예루살렘 성지 순례였지만, 18세기 들어 베니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베니스 여행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으로부터 부유한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베니스로 몰려들었고, 베니스 공화국은 관광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법령을 완화하기도 했어요.
특히 17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일종의 현장 학습 여행이었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통해 어린 귀족들이 본격적인 사회 진출에 앞서 해외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자 했는데, 18세기 베니스는 그랜드 투어의 주요 종착지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영국의 젊은 귀족들이 베니스 방문을 통해 견문만 넓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베니스를 구경하고 싶어했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도박과 매춘이었기 때문이죠! 18세기 베니스는 유럽 제일의 환락의 도시로 아주 유명했어요. 당시 베니스는 도박과 성매매로 유럽 제일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초반에는 매춘 사업이 더욱 활성화되어 1만 2천 명 정도의 매춘부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해요. 베니스의 인구가 10만을 넘지 않았던 사실을 고려하면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 중의 절대 다수가 매춘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당시 베니스에는 리도토(Ridotto)라 불리는 도박장이 70개 이상 성업 중이었기에 ‘도박 도시’라는 꼬리표도 가지고 있었어요. 리도토는 게임을 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술이나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응접실을 가지고 있어 사교 공간의 역할도 했는데, 젊은 외국 귀족들은 가면을 쓴 아름다운 베니스 귀족 여성과의 연애를 희망하며 이곳을 들렀습니다. 도박장 안에서는 가면을 착용해야 했고 이 덕분에 비밀스러운 애정 행각도 가능했어요. 따라서 당시 베니스 남자들은 가면 축제 기간을 싫어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을 만큼, 도박장은 베니스 여성들이 일탈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3. 카사노바
매춘과 도박이 성업 중이었던 18세기 베니스는 아주 퇴폐적인 도시였고, 이러한 분위기를 잘 대변해 주는 인물이 바로 ‘카사노바’입니다. 우리가 흔히 바람둥이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유명한 카사노바는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1725년 4월 2일 베니스에서 출생한 그는 15세에 성직에 입문, 17세의 나이로 파도바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총명했어요. 하지만 카사노바는 성직자 신분에도 여성 신자들을 꼬시는 등 일탈 행위를 일삼았고, 그를 둘러싼 구설수들이 나오자 교회에선 그를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바람둥이 행각이 시작되었습니다. 화려한 언변과 재능으로 여자들을 유혹했고, 자신이 쓴 회고록에 의하면 29세에 122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눴다고 해요. 그는 즐거움을 찾아 교회, 군대, 도박장, 커피숍 등을 누비며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베니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는 1720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로, 실제 카사노바가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자주 들렀던 헌팅 장소로도 유명해요. 당시까지만 해도 여성은 카페에 출입할 수 없었는데 이 플로리안 커피숍만큼은 여성 출입을 허용했기 때문이죠.
또한 카사노바는 탄식의 다리(Ponte di sospiri)를 지나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베니스의 감옥에서 15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해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한 적도 있습니다. 탈출한 카사노바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러시아, 네덜란드 등 유럽 이곳 저곳을 떠돌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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