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카이사르 시저, 그리고 또 누가 있어요? 또 다른 얘기는 없을까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마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독재자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배출해 낸 도시예요. 화려한 예술가부터 추악한 귀족까지, 이 거물들은 로마 거리에 드라마틱한 감동과 흥미를 더해주었죠. 로마에서 가장 괴상한, 괴짜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으러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요?
1. 교황 알렉산더 6세(Papa Alessandro VI)
르네상스 시대에 교황으로서 추악한 통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알렉산더 6세(Papa Alessandro VI)는 논란과 음모의 인물이었어요. 본명은 로드리고 보르지아(Roderic Borja)로, 물론 교황으로서 권력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립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등의 정책을 실시하여 교회 내부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예술의 중요한 후원자로 다양한 예술가를 지원하고 예술 작품을 의뢰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 번영에 기여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6세는 친족주의와 부패로 악명이 높았고, 호화로운 파티와 생활 방식으로도 아주 유명했기 때문에 그의 여인들과 사생아들은 늘 마을의 화제가 되었고, 로마에서 가장 화려한 교황 중 한 명이라는 명성을 더했어요. 그의 임기 동안 일부 교회 인사들이 부정한 행동을 저지르고 교회 내부의 부패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알렉산더 6세의 ‘지도력 부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이는 교황청의 권위와 명예에 아주 큰 타격을 입혔고, 알렉산더 6세의 통치는 르네상스 시대 교황청과 가톨릭 교회의 명성에 지속적인 오점으로 남겨지는, 교황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로 기억된다고 합니다.
2. 네로 황제(Nero)
폭정과 과대 망상으로 악명 높은 네로 황제는 서기 54년에 의붓아버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뒤를 이어 16세의 어린 나이에 로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지출과 호화로운 오락으로 유명한 네로의 통치는 스캔들과 논란으로 얼룩졌답니다.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독재적인 통치자 중 한 명으로도 유명해요.
네로의 초기 통치는 긍정적인 개혁으로 특징 지을 수 있었어요. 세금을 줄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으며, 노예의 권리를 향상하고 정부 내 부패를 줄이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어요. 또한, 음악과 연극 등의 예술에 큰 관심을 가졌어요. 네로는 자신 스스로를 재능 있는 연주자라고 생각하여 가수, 거문고 연주자, 배우로서 대중 공연에 자주 참여했죠.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로는 폭정을 서슴지 않았고, 그중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서기 64년에 벌어진 ‘로마 대화재’였어요. 네로가 화재를 직접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가 불타는 것을 지켜보면서 화재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로마가 불타고 있는 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죠.
이밖에도 네로는 금박, 보석 및 복잡한 장식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궁전 단지인 황금의 집(Domus Aurea)을 포함하여 로마에서 여러 대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말년에는 폭정, 사치, 편집증이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첫 번째 아내를 포함하여 여러 인물을 처형하거나 자살하도록 강요했다고도 해요. 네로의 통치는 점점 지지를 잃었으며 그에 대한 반란과 음모가 일어나 결국 원로원의 탄핵과 처형의 위협에 직면하죠. 이에 네로는 로마를 떠나 서기 68년, 30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집니다.
3. 카라바지오(Caravaggio)
출처 / Public domain
카라바지오(Caravaggio)로 더 잘 알려진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빛과 그림자를 혁신적으로 사용하는 작가이자 드라마틱하며 사실적인 화풍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랍니다. 극적인 명암 대비 스타일과 대담한 구성으로 미술계에 혁명을 일으킨 혁명적인 예술가였죠.
카라바지오는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여 그의 작품에 깊이감과 현실감을 만들어내는 명암 대비법(Chiaroscuro)이라는 획기적인 회화 기법을 개발했어요. 이 기법은 바로크 양식과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답니다. 대부분의 동시대 사람들이 주제를 이상화했던 것과는 달리 카라바지오는 종종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아 성서적, 신화적 인물을 거친 사실주의로 묘사했어요. 카라바지오의 그림은 순수한 감정의 강렬함과 심리적 깊이가 특징이랍니다.
그의 예술과 비슷하게 카라바조는 논란과 스캔들로 가득 찬 소란스러운 삶을 살았는데요. 그는 호전적인 성격으로 갖은 싸움에 끼어들고 법을 자주 위반하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자신의 그림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삶이었죠. 하지만 이런 격동적인 생활 방식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지오는 매우 종교적이었고, 예술에 대한 공헌으로 널리 호평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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