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체코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러요?”
보헤미안은 현재 체코 공화국의 옛 지명인 ‘보헤미아’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에요. 세계적인 락 밴드 QUEEN 의 명곡인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 번 정도 들어봤을텐데, 떠돌이 민족인 집시처럼 자유분방하게 방랑하는 부류를 두고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자유롭고 슬픈 역사를 가진 보헤미안에 대해 알아볼까요?
1. 보헤미아 (Bohemia)
# ‘보헤미아’라는 단어
보헤미아(Bohemia) 라는 단어는 체코의 중부, 남부 쯤에 위치한 지역의 고유 명칭이자 민족의 명칭이에요. 체코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분홍색 지역의 보헤미아(Cechy), 초록색 지역의 모라비아(Morava), 노란색 지역의 실레지아(Slezsko), 총 3개의 도로 나뉘지요.
보헤미아와 체코는 체코인들에게는 어원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은 단어예요. 체코인이 살기 훨씬 이전에 ‘보이(Boii)’ 라고 불리던 켈트 족이 이 지역에 살았고 보이라는 라틴어가 소리만 남아 ‘보헤미아’라는 지역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켈트 족이 떠난 후 체코 건국의 아버지인 ‘체히(우리로 치면 단군 할아버지!)’가 체코를 건국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이곳에 사는 민족을 ‘체히’ 라고 불렀답니다. 바로 이것에서 체코라는 국가명이 유래했어요. 우리 나라도 ‘한’민족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외국에서는 여전히 이 지역을 ‘보헤미아’, 이 지역 사람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불렀고 현재의 체코가 자리 잡은 후에도 그 명칭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보헤미아와 체코는 지금까지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한국으로 예를 들자면, 우리의 이름을 ‘한국’이라고 정했지만 역사 속에 사라진 고려에서 딴 ‘Korea’ 라는 이름으로 외국에서 우리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이해가 조금 쉬울까요?
2. 보헤미안(Bohemian)의 이미지
# 자유로움의 상징인 집시
우리는 왜 어느 순간부터 보헤미아라는 단어로부터 자유와 낭만, 방탕하고 어지러진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건 체코인들의 실제 캐릭터라기 보다는 외부에서 붙은 것에 가까워요.
체코의 역사를 보면 크게 두 번의 망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국가 군대 간의 정권 및 종교 전쟁 이었던 빌라 호라 전투 이후, 체코 인사들의 숙청으로 인해 주요 인사들이 해외로 망명한 일이에요. 두 번째는 프라하의 봄 이후, 소련의 도움을 받아 공산주의자인 후삭이 집권하며 정부와의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시민이 차별받고 괴롭힘 당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유를 위해 지식인들이 힘을 모아 인권과 시민권을 억압하는 정권의 비도덕성을 알리고, 시민들이 불합리함에 다시금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77헌장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정부는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이며, 선동적이고 모욕적이라고 반박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서명한 지식인들에게 보복합니다. 이 때 많은 이들이 강제 망명을 당했어요.
이렇게 타국으로 망명해 온 보헤미안(외국에서 체코인들을 부르던 이름)들의 자유로운 삶과 생활 방식이 현지인들과는 사뭇 달라 이러한 이미지가 굳혀졌다고 하는데요. 사실 체코인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자유롭고 집시적인 사상에서 기인했다기 보다는 해외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모습, 고국을 그리워하며 애쓰는 모습들이었답니다. 국가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던 시기다 보니 타국민들은 ‘카더라 통신’을 통해 동쪽에서 이동해온 보헤미안들을 환상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들로 인식했고, 프랑스에서는 주로 그들을 거지나 집시로 인식하게 되었죠. 이러한 인식들이 다시 또 전파되고 재생산 되어 지금의 보헤미안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쫓겨난 민족의 분노와 절망, 낯선 땅에서의 애환은 현실의 속박과 더불어 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더 절실하게 보이게 했어요. 보헤미안은 이러한 감정들을 예술로 승화했고, 당시 체코인을 부르던 ‘보헤미안’은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답니다.
# 다가가서는 안 될 매혹의 팜므파탈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여주인공 카르멘은 집시 여인이죠. 그녀는 남자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대표주자에요. 다른 작품을 살펴 볼까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 역시 팜므파탈 형의 집시 여인이죠. 이 작품들은 당시 유럽인들이 집시 중에서도 특히 ‘집시 여성’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보여줘요.
서유럽에서는 동쪽에서 온 ‘낯선 이들’에 대해 그들만의 시선을 만들었고, 유랑과 탄압의 역사를 겪으며 생존을 위해 갖가지의 천대 받는 일을 한 집시 여성들에게는 요부와 창녀의 이미지가 쉽게 투영됐어요. 혹은 ‘다가가서는 안될 매혹’ 또는 ‘악의 근원’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집시 여성은 팜므파탈 라는 인식이 만들어졌답니다.
춤과 노래에 애환을 담으며 그들만의 예술로 승화하는 그 모습들이 어쩌면 아주 매혹적으로 비쳐지지 않았을까요?
프라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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