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는 동서남북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을 만큼 이탈리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어요. 하지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다소 침체기를 겪게 되죠. 그 이후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가문이 밀라노의 르네상스를 이끌면서 밀라노는 다시 한번 문화적 도약을 이루어냈고 지금의 상업적, 문화적 중심지가 될 수 있었어요. 밀라노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 놓은 두 가문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밀라노를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1. 밀라노의 두 가문,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 밀라노의 두 가문
밀라노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스포르체스코성에 가면 비스콘티와 스포르차의 흔적을 볼 수 있어요. 13세기부터 밀라노를 지배하던 비스콘티 가문은 이후 신성 로마 제국에게 지위를 받아 밀라노 공국으로 승격되면서 더욱더 강력한 권력으로 밀라노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서 깊은 명문 귀족가인 비스콘티 가문의 남자 직계가 단절되었고, 결국 비스콘티 가문의 용병 대장에 불과했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비스콘티의 상속녀와 결혼하여 밀라노를 지배하기 시작했어요. 스포르차 시대의 밀라노 공국은 크게 발전했지만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과의 경쟁으로 북부 이탈리아를 통일하진 못했고, 결국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며 사실상 멸망하게 되었죠.
스포르체스코성은 비스콘티 가문이 방어를 위해 지은 성으로 비스콘티 가문의 절멸로 인해 파괴되었다가 스포르차 대공이 개축하였어요. 그래서 성의 내부에는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가문의 문장이 많이 남아있어요.
# 비스콘티-스포르차 타로카드
워너비들은 혹시 타로점을 쳐본 적 있나요? 사실 타로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동의 카드가 14세기 이탈리아로 건너가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원래는 점술 용도가 아니라 게임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요. 이런 초창기의 타로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드가 바로 이 ‘비스콘티-스포르차’ 타로 카드예요. 이 카드는 비스콘티 가문에서 의뢰한 것으로, 결혼 선물이라는 설이 있어요. 가문 구성원들과 역사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어 두 가문의 정치적 결합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스포르체스코성과 비스콘티-스포르차 타로카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밀라노의 역사에서 두 가문은 서로 뗄 수 없는 사이였어요. 그럼 이제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가문이 어떤 곳이었는지 자세히 알아볼까요?
2. 비스콘티 가문이란?
#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
중세 유럽의 가문을 알아보려면 그 가문의 문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비스콘티 가문의 문장은 동시대의 다른 가문의 문장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눈에 띄는 편이에요. 대부분의 가문이 사자, 독수리, 십자가와 같은 상징을 사용하는 데 반해 비스콘티 가문은 뱀을 가문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에서 뱀은 불길함을 상징하여 선호하지 않던 동물인데요.
비스콘티 가문의 뱀은 비시오네(이탈리아어로 ‘큰 뱀’을 의미)라고 불려요. 이런 상징을 사용하게 된 이유로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비스콘티 가문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여 사라센(이슬람 장군)을 무찔렀고, 이 사라센 장군을 삼키고 있는 뱀을 문장에 넣었다는 건데요. 또한, 마치 뱀이 사람을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뱀은 머리부터 먹기 때문에, 다시 보면 사람이 뱀의 입에서 나오는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뱀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된다, 즉 성장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실제로 비스콘티 가문은 이탈리아 북부 통일을 꿈꾸며 계속해서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키고 점차 가문의 규모를 키워나갔는데요. 가문의 문장이 꼭 그 가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죠?
# 잔 길레아초 비스콘티와 밀라노 대성당
비스콘티 가문의 ‘잔 갈레아초’는 아주 특별한 성당을 건의하게 되는데요. 이에 맞춰 대주교가 성당을 짓기 시작하면서 밀라노 대성당이 건립됩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균형, 비율, 대칭의 조화를 중시하는 르네상스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밀라노는 알프스 너머에서 유행하던 고딕 양식에 이탈리아의 방식을 더하여 무려 600년에 걸쳐 거대한 성당을 지었어요.
밀라노 대성당은 비스콘티 가문의 폭정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달래고, 다른 도시 국가와 비교했을 때 밀라노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어요. 당시 비스콘티 가문은 오랜 지배로 힘이 커져 있었고 높은 세금 등으로 귀족과 노동 계급의 불만이 쌓여있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전임자이자 잔 갈레아초의 삼촌인 베르나보 비스콘티는 밀라노 사람들의 증오를 더 키운 인물이었는데요. 잔 갈레아초는 결국 삼촌을 폐위시키고 독살한 후 자신이 밀라노를 집어삼켰어요. 그러니 전임자와 자신은 다르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죠.
잔 갈레아초는 베로나 등 인근 도시들을 정복하면서 밀라노의 세력을 넓히고, 독일왕(신성 로마 제국)에게 돈을 바쳐 공작 작위를 얻어내며 마침내 밀라노 공국을 정식으로 세우게 되었어요. 밀라노 공국의 건립 이후로도 피렌체의 군대를 박살내고 볼로냐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어 이탈리아 북부 통일의 꿈을 이루나 싶었죠. 하지만 통일을 거의 눈 앞에 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비스콘티의 큰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3. 스포르차 가문이란?
# 스포르차 가문의 문장
가문의 창시자가 용병 대장 출신이었던 만큼 가문들의 문장으로 사용할 상징이 없었기 때문에 스포르차는 비스콘티가 사용하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였어요. 이 문장은 비스콘티 가문이 고유로 사용하던 문장에, 밀라노 공국으로 인정받으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상징인 독수리를 추가한 표식이에요. 독수리는 권력, 권위, 위엄과 군사적 능력 그리고 신화적인 의미에서 제국을 상징했기 때문에 고대 로마부터 신성 로마 제국까지 계속해서 사용된 상징이기도 해요.
스포르차 가문은 여러 방면에서 비스콘티 가문을 이어감과 동시에 예술과 문화적인 성격을 많이 가미하였는데요.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밀라노 대학교를 설립하여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학술 기관 중 하나가 되었죠.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예술과 인문주의의 후원자 역할을 해냈죠. 비스콘티를 이어가면서도 군사적인 것뿐만 아닌 인문학적인 수준도 높인 곳이 바로 스포르차 가문이었어요.
# 루도비코 스포르차, 예술의 후원자
스포르차 가문 시대에 들어오며 밀라노 공국은 비단 무역, 중계 무역을 통해 르네상스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특히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후원자를 자처했는데요. 이러한 배경에는 그가 예술을 좋아했던 것도 있겠지만, 루도비코가 조선의 수양대군과 비슷하게 왕위를 이을 조카가 죽은 뒤에 대공 자리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에 비난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이유는 조금 불순할지 몰라도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이런 후원 덕분에 빛을 발한 예술가들이 여럿 있어요. 제일 유명한 건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죠. 다른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밀라노로 와 루도비코의 후원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고 도시를 설계하게 되었어요. 위 그림은 다빈치가 루도비코를 위해 처음으로 그려준 작품으로, 작품 속 인물은 루도비코의 연인인 체칠리아 갈레라니예요. 체칠리아는 교양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했다고 해요. 그래서 루도비코는 혼인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체칠리아에게 푹 빠져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의뢰하게 된 거죠. 이 초상화로 루드비코의 마음에 쏙 든 다빈치는 이후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수도원의 식당에 그리게 된답니다.
명품 브랜드 몽블랑에서는 만년필 한정판 라인업으로 예술후원자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하고 있는데, 그중 22번째 에디션에 루도비코의 이름을 붙였어요. 그만큼 밀라노가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임을 알 수 있어요.
4.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그리고 오늘날의 밀라노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가문의 흔적은 오늘날의 밀라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앞서 말했던 스포르체스코성, 밀라노 대성당, 최후의 만찬 등 다양한 유적지와 작품에 남아있기도 하고, 밀라노 대성당을 짓기 위해 만든 나빌리오 운하를 필두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곳들도 많아요. 그리고 두 가문 덕분에 밀라노가 르네상스 시기를 꽃 피운 만큼 지금의 밀라노가 패션의 도시로 발전하는 데에도 배경이 되어주었죠.
또한, 비스콘티의 가문의 문장인 비시오네는 밀라노 축구팀인 인터 밀란, 방송국, 자동차 브랜드인 알파 로메오 등 밀라노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산업에서 로고로 활용하고 있어서 거리 곳곳에서 이 뱀 모양을 만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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