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는 음악의 도시라고 불리는데 언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 거죠?”
비엔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대음악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음악의 성지예요. 매년 1월 1일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회인 ‘비엔나 신년음악회(Vienna New year’s Concert)’가 열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비엔나는 언제부터 음악의 도시가 되었을까요? 더 풍부한 여행을 위해 황홀한 선율의 세계로 더 깊이 빠져볼까요?
1. 클래식이란?
클래식은 고전을 뜻하는 단어로, 영어로는 ‘Classic’ 독일어로는 ‘Klassik’이라고 해요. 어느 국가에서나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처럼 ‘고전’은 시대를 넘어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죠. 그렇다면 과연 클래식이란 무엇일까요? 19세기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식은 모든 세대가 비웃지만, 클래식은 인류사와 함께 영속한다.”
즉 클래식이란, 단순히 고풍스럽고 오래된 고전이라는 의미를 넘어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음악’을 품고 있는 비엔나를 여행한다는 것은 곧 이 도시와 오랜 시간 함께해온 고유한 가치를 느껴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약 850여년 전에 축성된 비엔나의 랜드마크 슈테판 대성당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결혼식,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장례식 등 비엔나의 대소사를 함께 해 온 곳으로 도시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비엔나의 중심거리인 ‘케른트너 슈트라세(Karntner Strasse)’에서도 허가 받은 몇몇의 예술가들이 시민과 여행객들을 상대로 거리 공연을 하는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음대 학생이거나 프로 클래식 음악가라 꽤 높은 수준의 공연을 보여주죠. 여름엔 시청 청사 앞에 커다란 스크린과 스피커를 설치하고 영화와 음악회를 보여주는 필름 페스티벌을 무료로 열기도 해요. ‘음악’ 자체가 비엔나를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임과 동시에 상품인 셈이죠!
그렇다면 비엔나는 언제부터 대중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고장’으로 기억되기 시작했을까요?
2. 클래식의 고장, 비엔나
# 클래식의 발전
중세 르네상스 이후에 서양 음악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발전되어 왔어요. 당시 종교는 국가와 가문을 결속시키고 서로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통치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절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교회음악의 발전은 곧 대중음악의 발전으로 나타났는데 오페라나 협주곡 등이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계기 역시 종교, 즉 교회음악이 밑거름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 시절의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런던과 파리, 그리고 나폴리를 잇는 유럽 최고의 대도시이자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였기에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귀족계와 부유층은 권력을 위해 비엔나에 모여 들었고, 자신의 예술을 지지해주고 장려해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그들을 따라 가난하고 젊은 음악인들이 모이게 된 것이랍니다.
로마 카톨릭을 국교로 삼은 합스부르크가의 수도는 종교 행사 이외에도 황제와 귀족들의 사교 모임 또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어요. 몇몇 귀족가문들은 개인 악사를 직접 고용하여 사적인 음악회를 즐겼고, 그렇게 사교음악도 함께 발전할 수 있었지요. 헝가리의 명문 귀족인 에스터하지 가문은 하이든이라는 교향곡의 아버지를 탄생시켰고, 잘츠부르크 대주교 아래에서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었던 모차르트 역시 비엔나에서 전성기를 보냈어요.
그리고 이후 등장한 베토벤은 비엔나에서의 삶을 통해 이름을 더 널리 떨칠 수 있었지요. 하이든과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예술가로, 이 세 명의 음악가들이 바로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라 불릴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랍니다.
3. 비엔나 음악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
# 서양 음악의 황금기, 고전주의 시대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은 서양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로 누구나 음악 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에요. 이들은 모두 동시대에 비엔나에서 함께 음악을 탐구한 인연들이죠.
하이든은 24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모차르트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베토벤과는 사제 관계로 영향을 준 인물이에요. 파파(아버지)라고 불리며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다른 많은 음악가들에게 존경을 받던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봤죠. 모차르트 역시 하이든의 음악에 대해 경의를 표했고, 이들은 함께 협연도 하고 친구처럼 음악을 교류하곤 했어요.
18세기 말의 음악들은 과도기적이고 몰개성적이었기에, 이 3명의 음악가들이 펼친 고전주의 음악은 더욱 객관적이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듬뿍 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비엔나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고전파 시대의 음악 중심지였던 비엔나에서 열렬히 활동했어요.
하이든이 교향곡의 아버지답게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만들며 교향곡의 뼈대를 만들었다면, 모차르트는 41곡의 교향곡을 만들며 살을 촘촘히 붙였고, 베토벤은 이를 마지막으로 다듬어 완성시킨 뒤 마지막에는 스스로 고전파 형식을 파괴해서 낭만주의로의 길을 터주었답니다.
# 고전주의란?
보통 바로크 시대 이후를 고전주의라고 부르는데, 이 고전주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몽주의’에 대해 알아야 해요. 계몽주의란, 18세기 후반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 문학, 철학, 문화적 사상을 이야기하는데, 그 핵심은 바로 전통적인 관습과 의례, 도덕에 대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당시 계몽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음악을 즐기는 대상 역시 자연스레 일반 시민들로 넓어져서, 단순히 화려하고 복잡한 음악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선율 위주의 음악이 발전하게 되었죠.
이러한 고전주의는 바흐가 사망한 175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8세기 중반~19세기 초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라고 보고 있어요. 음악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3인방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한 시기이기도 하죠.
#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비엔나 고전파 3인방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함께 만들어간 ‘빈(비엔나) 고전파’라고도 불려요. 그 중 가장 먼저 태어난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여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지만, 이밖에도 소나타 형식과 관현악 편성법을 확립하고 현악 4중주와 같은 고전파 기악 양식을 완성시켜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차르트는 클래식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였다고 인정받고 있어요. 피아노 등의 다양한 악기를 위한 독주곡, 교향곡 그리고 현악 4중주까지 다채롭고 아름다운 명곡들을 많이 남겼답니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은 청각 장애를 딛고도 위대한 곡을 수없이 많이 남긴 전설의 인물로 빈 고전파 음악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마지막 음악가로, 고전파 음악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베토벤 역시 하이든과 연결고리가 있었으나 좋은 사이는 아니었어요. 노년에 인기를 얻어 쉼 없이 바빴던 하이든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청년 베토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해 짧은 만남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지요. 베토벤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9개의 교향곡, 수많은 협주곡과 실내악 등의 명곡을 통해 고전주의 음악을 최고로 발전시켰어요.
이렇게 세계음악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하이든과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삶과 음악 그리고 만남이 한 시대, 그리고 비엔나라는 도시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들의 음악을 더욱더 빛나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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