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 시내에는 분수가 왜 그렇게 많은 거예요?”
베른은 시내에만 총 100개가 넘는 분수가 있어 ‘분수의 도시’로 불릴 정도인데요. 각각의 분수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고, 또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왜 베른에 분수가 많은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고 물을 따라 도시를 산책해볼까요?
1. 베른에 분수가 많은 이유?
베른에 위치한 분수들은 중세시대에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며 소방용수의 역할도 겸했답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 많은 식수가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분수를 추가적으로 설치하게 되었죠. 주민들은 분수 근처에 모여 서로 뉴스나 정보를 공유하는 등 사교 모임을 하기 시작했고, 베른의 분수들은 단순한 식수 공급 수단에서 지역 주민들을 연결해주는 장소로서 발전하게 된 것이죠.
베른 주민들은 이러한 분수를 소중히 여기며 다양한 조각품으로 장식했습니다. 성서 속 인물, 역사적 인물, 민간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의 괴물 등,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각을 통해 베른이라는 도시의 가치와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2. 괴물과 성경, 역사 속 인물과 관련된 분수 이야기
#Kindlifresserbrunnen(오우거 분수)
베른에서 가장 붐비는 광장 중 하나인 Kornhausplatz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분수의 꼭대기에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벌거벗은 아이의 머리를 물어 뜯으며 또 다른 아이들을 손에 들고 있는 괴물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어요. 공공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괴기한 모습이죠.
분수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과거에는 어린이 및 영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는 것과 아이들에게 겁을 줘서 좋은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망태 할아버지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가설로 전해져 오고 있어요.
# Gerechtigkeitsbrunnen(정의의 분수)
법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상징물인 눈을 가린 채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이 분수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여신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디케’, 라틴어로는 ‘유스티아’라고 해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는 원래 칼만 쥐고 있었지만, 로마 시대에 들어와 ‘칼과 저울’이 동시에 등장하며 유럽 관공서와 거리를 장식하는 주요 장식품이 되었죠. 이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력인 ‘칼’ 말고도 공정과 공평을 상징하는 ‘저울’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대부분의 정의의 여신상은 권력이나 돈에 휘둘리지 않고 판단하겠다는 의미로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조각상들은 의도적으로 눈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법관이나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지는 않는지 쳐다보는 것이죠. 이 정의의 분수 역시 도심의 한 가운데에서 베른의 시민들을 내려다 보고 있고, 그녀의 아래에는 교황과 황제의 흉상이 자리 잡고 있답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죠?
#Simsonbrunnen(삼손 분수)
아인슈타인 하우스 맞은편에 위치한 이 분수는 성경에 나오는 영웅인 ‘삼손’이 맨손으로 사자의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대신 그의 머리카락이 바로 힘의 원천이기 때문에 머리를 자르지 않아야만 괴력을 유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여인의 유혹에 빠져 이 비밀을 누설하게 되었고,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빼앗긴 채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눈이 뽑히고 고된 노역을 하던 삼손은 마지막 순간, 기도를 통해 다시 힘을 얻게 되었고 적군을 물리침과 동시에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분수 꼭대기의 조각상은 긴 여정을 떠난 삼손이 사자를 만나 공격을 받는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인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이 일화는 삼손의 초인적인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로 그가 선택 받은 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삼손의 힘을 통해 베른 공동체를 결속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해요.
#Anna-Seiler-Brunnen(안나 자일러 분수)
파란 드레스를 입고 작은 접시에 물을 붓고 있는 안나 자일러 분수는 베른 최초의 병원 설립자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1354년 11월 29일, 안나 자일러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집에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집과 유산을 베른 시에 기증하였어요. 이후 ‘Seilerin Spital’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이 설립되었고, 위치는 이전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병원은 유지되고 있답니다. 푸른색의 가운과 물을 붓는 포즈는 그녀의 헌신에 대한 찬사라고 전해지고 있어요.
3. 베른의 상징과 관련된 분수들
#사격술과 관련된 분수
Schutzenbrunnen(궁수의 분수)
Ryfflibrunnen(라이플 분수)
스위스 중에서도 베른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시인만큼 오랜 시간 공식적으로 사격 훈련을 진행해왔고, 스위스에서 유명한 권총 중 하나가 이곳에서 개발되기도 했죠. 또한 시내에 ‘스위스 사격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베른과 사격술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으며 특히 과거 베른의 군인들은 석궁에도 능숙한 것으로 아주 유명했답니다.
그래서 사격과 석궁을 표현하는 분수들도 구시가지에 몇 개 자리잡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분수가 바로 Schutzenbrunnen과 Ryfflibrunnen이에요.
Schutzenbrunnen은 갑옷을 입은 군인이 베른 총사협회의 깃발을 들고 있고, 그의 발 아래에는 새끼 곰이 어깨에 총을 얹고 있는 모습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어요. Ryfflibrunnen은 어깨에 석궁을 걸치고 수염을 기른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분수는 스위스의 영웅인 ‘빌헬름 텔(Wilhelm Tell)’을 기리는 분수라고 전해져요. 14세기 최고의 명사수인 빌헬름 텔은 머리 위의 사과를 활로 쏴 맞춘 일화로 유명하죠. 여기도 Schutzenbrunnen와 마찬가지로 새끼 곰이 총을 겨누고 있답니다.
#곰과 분수
구시가지의 치트글로게 시계탑 앞에 위치한 이 분수는 체링겐 분수라고 불립니다. 베른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중세 독일의 귀족 가문인 ‘체링겐 가문’의 ‘베르히톨트 폰 체링겐’ 공작이 아레(Aare) 반도에서 곰을 사냥한 후 도시의 위치를 정했다고 하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한 분수인 것이죠.
금빛으로 뒤덮인 화려한 빨간 헬멧을 쓴 흑곰은 두 자루의 검과 방패로 무장한 채 전투에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방패에 그려진 붉은 바탕의 황금 사자 문양은 체링겐 가문을 상징하고, 큰 곰의 발 옆에 있는 새끼 곰은 베른의 특산물인 샤슬라 포도를 뜯어 먹고 있죠.
‘샤슬라(Chasselas)’라고 불리는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 베른에서는 과거 스위스의 수도를 정하는 표결을 할 때 한 분수에서 물 대신 화이트 와인을 흐르게 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날에도 한 번씩 축제나 행사를 통해 물 대신 와인이 흐르는 분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렇듯 베른의 분수들은 오랜 시간 베른을 지켜온 만큼 단순한 조각이 아닌 도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으니, 구시가지를 천천히 산책하며 베른의 문화를 가득 느껴보세요!
베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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