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흔적, 오베르 쉬르 우아즈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는 반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 70일 동안 살았던, 프랑스 파리 북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에요.
고흐의 작품 중에서는 이 마을과 주변 지역의 풍경, 카페, 교회, 밭, 석양 등을 그린 작품들이 있으며, 고흐 이외에도 많은 예술가와 화가들이 모여들어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에요. 마을 자체의 분위기도 세련되고 옛날 정취를 불러일으켜 프랑스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빈센트 반 고흐
고흐, 자화상_시카고 미술 연구소(미국)
출처: 위키피디아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모든 사랑에 실패하고,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리는 등 힘든 일생을 보냈어요. 초기 네덜란드 시절에는 어두운 색조의 그림을, 후기에는 파리에서 생활하며 인상파,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화풍을 전개했어요.
자신의 귀를 자르며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권총으로 자살했으며, 그가 동생 테오 및 기타사람에게 보낸 방대한 양의 편지는 서간문학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해바라기_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_반 고흐
알고 가면 더 좋은 정보
고흐의 일생
세계적인 화가 반 고흐는 후기 인상주의의 정점이자 현대 회화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죠. 지금은 엄청난 명성을 가졌지만, 그가 살아있을 당시 팔린 작품은 단 한 점으로 어려운 일생을 보냈습니다.
1886년 고흐는 고향 네덜란드를 떠나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로트렉, 폴 고갱 등을 만나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서죠. 그러다 각박한 파리 생활에 지친 그는 화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로 갑니다. 하지만 처음 목표했던 공동체 생활은 마음과 같지 않았죠. 테오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던 고흐에게 고갱이 찾아와 함께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지만, 의견과 성격 차이로 충동을 거듭하다 둘의 사이는 어긋나고, 고흐가 고갱과 다툰 어느 날 급기야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고흐는 결국 정신 병원에 들어갑니다. 이후 병원에서 퇴원하고 그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예술가들의 정신과 주치의로 일하던 가셰 박사가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게 되죠.
그렇게 그의 마지막 70일 동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있는 작은 여관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합니다. 별로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마을이지만 구석구석 고흐의 슬픈 흔적들이 남아있어요. 그를 치료했던 가셰 박사, 여인숙 주인의 딸, 마을의 계단,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살며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그의 캔버스에 담겼는데, 70여 일 동안 무려 8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마치 곧 죽음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의 마지막 숨결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고흐의 죽음
고흐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되는 밀밭에서 총을 맞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밀밭에서 동네 불량배들이 쏜 총에 맞은 것이다, 두 번째는 직접 총을 쏴서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그 밀밭은 당시 고흐가 머물던 여관 바로 뒤편에 있는데, 동네 불량한 자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이 맞은 총에 맞은 것이라는 말이 있죠. 게다가 고흐가 총을 맞은 위치가 스스로 총을 겨눴을 때 총알이 박힐 수 없는 위치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학자마다, 사람마다, 믿는 내용마다 가설이 다르답니다.
총을 맞은 고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게 아닌, 며칠 뒤 생을 마감했어요. 그런데 그 며칠 동안 치료를 제대로 받았다면 살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머무는 동안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정신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 ‘가셰 박사’입니다. 가셰 박사는 고흐가 오베르에 지낼 때, 동생 테오가 고흐의 치료를 위해 소개해 준 정신과 의사에요. 그는 사별을 해서 고흐만큼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인데, 그런 그를 보고 고흐는 가셰 박사가 자신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고 해요.
아무튼 고흐가 죽기 직전 총을 맞았을 때, 박사는 총알을 빼낼 수 없다고 했고, 수술과 치료 대신 병간호만 이틀간 하다가 고흐는 결국 생을 마감합니다. 가셰 박사가 논쟁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고흐가 죽기 2년 전 박사의 딸을 좋아했고, 그것에 화가 난 박사가 고흐와 의절할 정도로 화를 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박사가 고흐를 치료해주지 않은 것을 고흐가 박사의 딸을 좋아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이야기를 알고 고흐의 그림과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본다면 재미가 배가 될 거예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여행 코스 소개
라부 여인숙
반 고흐는 이 곳에서 방 값이 가장 저렴했던 라부 여인숙(여관)에 묵었습니다. 당시 그가 숨을 거둔 방은 '자살이 일어난 방'이라는 딱지가 달려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았다고 해요. 당시의 물건들도 모두 버려 현재에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침대만 있죠.
현재 여인숙 앞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는데, 고흐가 와서 쉴 거라고 생각하고 매일 고흐와 동생 테오를 위해 와인 두 잔을 꺼내 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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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IN
고흐가 거닐며 영감을 얻었을 골목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보세요!
오베르의 성당
반 고흐의 오베르의 성당_오르세 미술관, 파리
고흐의 작품 <오베르의 성당>의 배경지입니다. 해당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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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IN
까마귀가 나는 밀밭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_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반 고흐가 총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밀밭. 그의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지입니다. 고흐가 머물던 여관 바로 뒤편에 있는 이곳은 당시 동네 불량한 자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들이 맞은 총에 맞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당 작품은 네덜란드 암스테드람의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4 MIN
고흐와 테오의 무덤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 동생 테오의 품 안에서 1890년 7월 27일 반 고흐는 숨을 거뒀어요. 교회에서 몇 걸음 위에 위치한 묘지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과 6개월 뒤 세상을 떠난 동생 테오 반 고흐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답니다.
26 MIN 혹은 버스 26 MIN
가셰 박사의 집
반 고흐의 폴 가셰 박사_오르세 미술관 37전시실, 파리
오베르에 머무는 동안 반 고흐는 그의 그림에 호의적이었던 가셰 박사에게 모델이 되어주기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가셰 박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으며, 같은 그림을 또 그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죠. 현재 가셰 박사의 초상 그림은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오르세에 있는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또 한 점의 <폴 가셰 박사>는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250만 달러에 낙찰되어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나타나기 전까지 최고 경매가 작품의 자리를 유지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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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고트립의 추천 일정과 함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알차고 꽉찬, 행복한 시간을 보냈길 바라요!
*보통 편리한 이동을 위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와 지베르니를 함께 방문하는 일일투어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파리 근교 투어는 마이리얼트립이나 클룩 등 여행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