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역사를 알고 브라티슬라바에 가면 더 재밌을 거 같긴 한데… 역사 공부는 재미없을 것 같아요..”
학교 수업 시간에 ‘벨벳 분리’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슬로바키아는 과거 헝가리와 독일의 지배를 받고, 근접국인 체코와 연방 결성을 맺으며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다가 비교적 최근인 1993년 분리 독립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알고 여행하면 더 흥미로운 슬로바키아의 이야기, 들을 준비 되었나요?
1. 슬로바키아란?
#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는 약 1,000년 동안 헝가리 왕국 역사의 일부로서 존재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체제에 편입되어 존재해 왔어요. 슬로바키아의 공식적인 독립이 이루어진 1993년 이전까지는 독립된 민족국가로서 살아오지는 못한 것이죠.
그러나 슬로바키아 민족의 역사는 기원 후 5세기부터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슬로바키아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민족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 슬라브 민족
슬로바키아 민족은 대부분 슬라브(Slavs)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슬라브족은 슬라브어파 언어를 쓰는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민족들을 일컫는 말로, 유럽 전체 인구의 약 1/3을 차지하는 최대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구소련과 동유럽, 발칸 반도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지에 거주하고 있어요.
슬라브족은 언어의 근친성과 지리적 위치에 따라 서슬라브족(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과 동슬라브족(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남슬라브족(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몬테니그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으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언어는 비슷하지만 상이한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 각각 다른 종교를 채택했는데요. 서슬라브족과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및 우크라이나는 로마 카톨릭을, 보스니아는 이슬람, 러시아 등 그 외 슬라브족은 대부분 정교회를 믿고 있죠.
2. 외세의 지배로부터 시작된 국가의 발전
# 헝가리 지배의 시작
이슈트반 1세
헝가리의 이슈트반 1세는 11세기 초 교황으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며 유럽 기독교 국가의 토대를 세우고, 쥬파(župa)라는 행정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쥬파는 11세기 슬로바키아 지역에도 설치되어 12세기에는 슬로바키아가 헝가리 왕국에 완전히 편입되었어요.
이후 슬로바키아에는 시장의 발달로 도시가 형성되고, 독일에서 넘어온 이주자들이 서유럽의 선진 기술을 활용하여 중부 슬로바키아 일대의 광산을 개발하는 등 점차 도시의 모습을 갖춰 나가게 되었습니다.
# 브라티슬라바의 번영
모하치 전투(Mohácsi csata)
1526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가 헝가리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헝가리 지역에 속하는 슬로바키아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즉 슬로바키아를 지배하는 헝가리를, 이제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니 사실상 슬로바키아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있게 된 것이죠.
같은 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지금의 터키)이 헝가리를 침략하여 일으킨 ‘모하치 전투’에서 처참히 패배한 헝가리는 당시 수도였던 부다를 빼앗기고 브라티슬라바로 수도를 이전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약 200년간 헝가리의 수도 역할을 한 브라티슬라바는 도시가 크게 번영하게 되었죠.
하지만 훗날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부터 부다 지역을 재탈환하고 헝가리 영토를 회복하면서 슬로바키아 지역은 헝가리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됩니다.
# 민족 부흥 운동
헝가리의 본토 수복 이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유증을 떨쳐내고자 시작된 적극적인 ‘헝가리 민족주의 정책’은 슬로바키아인들의 반발심에 불이 붙이는데 충분했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민족의 과거사와 정체성 및 고유언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민족의식이 고취되었고, 18세기 말 처음으로 헝가리 내 자치를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죠.
초기의 투쟁은 종교에 따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으로 나뉘었어요. 가톨릭 진영에서는 슬로바키아 민족을 체코와는 다른 독립적인 민족으로 간주하고 ‘베르놀라크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으나 정착되진 못했습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는 체코어를 문어로 사용하였고, 자신들을 체코 민족과 동일한 민족으로 간주했어요. 두 진영은 헝가리로부터의 자유 확립과 민족의 문화 수준을 높인다는 목표는 같았으나, 역설적이게도 두 진영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슬로바키아 민족 부흥 운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1840년에 들어와 헝가리인들의 탄압이 더욱 거세지면서 슬로바키아 청년당 지도자 슈투르를 중심으로 ‘슈투르어’라고 하는 새로운 문어가 창제되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슬로바키아어의 시초입니다.
3. 체코슬로바키아
# 체코슬로바키아의 탄생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고,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제국에 속했던 민족국가들이 독립하게 되면서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 라는 연방 국가를 설립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신생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합스부르크 시기에 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체코로 인해 1인당 국민소득이 강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나 헝가리를 앞설 정도로 경제 발전이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쟁 피해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주도로 체코슬로바키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소련이 주도하는 동유럽 상호경제원조회의(COMECON)에 가입함으로써 소련에 대한 종속화가 점차 심화되었죠.
# 프라하의 봄, 그리고 벨벳 분리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이 국기를 들고 불타는 소련군의 탱크를 지나고 있는 모습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 자유화 운동이에요.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와 소련의 무자비한 탄압에 불만을 느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오자, 점차 커지는 혁명의 불씨를 막기 위해 소련군이 프라하를 무력침공하여 시위대를 진압한 사건입니다.
프라하의 봄이 실패로 돌아가고 날이 갈수록 공산정권의 압제가 심해지자 이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총파업과 저항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민주화의 물결이 다시 한번 일렁이기 시작했어요. 1977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은 정부의 인권탄압에 항의하고 헬싱키조약 준수를 촉구하는 '77 헌장'을 공표했으며 1989년에는 바츨라프 하벨의 주도 아래 공산 통치 종식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벨벳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최초의 비공산주의 대통령인 바츨라프 하벨이 당선되면서 약 40년간 유지된 공산주의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를 '벨벳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벨벳처럼 부드럽게,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인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에요.
4. 지금 슬로바키아는?
#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탄생
1992년 진행된 총선으로 체코에서는 시민민주당의 바츨라프 클라우스(Václav Kluas), 그리고 슬로바키아에서는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 정당의 블라디미르 메치아르(Vladimií Mečiar)가 승리하여 양 공화국의 총리로 선출되었어요.
클라우스와 메치아르는 양 공화국 간의 권한과 체제전환의 방법과 속도, 그리고 체코와 슬로바키아 단일민족 사상을 둘러싼 논쟁을 벌였는데요. 메치아르는 체코에 비해 낙후된 슬로바키아의 경제상황을 고려했을 때 클라우스가 주도하는 체코의 급진적인 경제개혁 방안이 슬로바키아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판단했고, 클라우스는 슬로바키아라는 짐을 덜어낸다면 체코의 경제개혁을 더욱 빨리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결국 양 공화국 총리는 두 국가를 분리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 1993년 1월 1일부터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은 분리되어 각각의 신생 주권 독립국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 슬로바키아의 현재
슬로바키아의 초대 정권은 권위적인 통치 스타일과 부정부패, 폐쇄적인 경제정책이나 러시아에 편향적인 외교정책, 그리고 소수민족을 억압하는 정책 등으로 유럽연합(EU)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약 18%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어요.
이후 1998년 총선에서 쥬린다 총리가 당선되며 친서방주의적인 정책을 펼침에 따라 EU 및 NATO 가입에 성공하였고, 적극적인 경제자유화 및 개방 정책을 추구하여 외국인 투자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슬로바키아 경제발전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노동법, 의료보험법, 연금법 등 소위 사회보장 3법 개정에 성공하여 저소득 서민층으로부터 신뢰를 얻었고, 쉥겐존 및 유로존 가입 등의 대외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죠.
21세기에 들어 유럽경제위기가 본격화 되면서 국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긴축재정 정책을 실시했고, 슬로바키아 민주주의가 크게 향상되어 언론 민주화 및 정보자유 접근법을 통한 정보통제 해제, 사법부 개혁 및 부패척결, 헝가리인과 로마인(집시)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슬로바키아는 꾸준히 변화의 바람 속에서 존재해 오고 있답니다.
브라티슬라바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브라티슬라바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