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안에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인 체스키 크룸로프의 중심에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이 자리 잡고 있어요.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도시 규모 비해 비정상적으로 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답니다. 보헤미아 왕국의 정치·경제·예술의 중심지였던 이 곳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까요?
1. 세계문화유산, 체스키 크룸로프
# 이름의 유래
체스키 크룸로프는 199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곳이에요. 도시의 구시가지와 성은 1200년대부터 약 300년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중세 고딕 양식에서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의 다양한 건축양식과 뛰어난 건축물, 또 역사가 깃든 문화재가 넘쳐나 그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 받게 되었죠.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이름은 ‘보헤미아의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체스키’와 ‘굽은 초원 및 강에 있는 습지’를 뜻하는 중세 독일어인 ‘크룸베노베(Krumbe ouwe)가 합쳐진 것이에요. 즉 ‘보헤미아에 있는 구불구불한 강의 습지’라는 뜻이죠. 이 때 강은 체스키 크룸로프를 둘러싸고 흐르는 블타바 강을 말하며, 블타바 강은 체코에서 가장 긴 강으로 프라하에서부터 체코를 관통하며 옛 도시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 보헤미아
그렇다면 ‘체스키’와 ‘보헤미아’는 어떤 의미일까요? 체코의 서부 지역을 ‘Čechy(체히)’, 동부 지역을 ‘Morava(모라바)’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서부 지역에 있는 체히의 라틴어 명칭이 ‘보헤미아’랍니다. 즉 ‘보헤미아’란 바로 체코의 서쪽 지역을 말하는 것이죠. 기원전 4세기에서 1세기 경,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던 켈트족 계통인 ‘보이(Boii)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역명으로 기원 후 6세기 쯤부터는 슬라브족 계통의 체코인들이 정착했다고 전해져요.
과거부터 이 보헤미아 지방에는 유랑 민족인 ‘집시’들이 많이 살았는데요. 보헤미아에 사는 ‘보헤미안’들은 유랑과 방랑을 하며 살아가는 ‘집시’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우리가 프랑스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리고 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지식인, 그리고 배우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패션과 인테리어 등 자유롭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장식들을 지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되고 있어요.
# 보헤미아 왕국
체코 공화국의 전신인 보헤미아 왕국은 보헤미아 지역에 있던 군주제 국가예요. 이 주변에는 은 광산이 있어 성주와 상인들은 은을 소금과 교환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어요. 이렇듯 무역으로 국력을 키우던 보헤미아 왕국에게 있어 중요한 교역로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던 체스키 크룸로프의 지리적 가치는 아주 대단했죠. 무역량이 많아짐에 따라 많은 교역 물자들이 지나는 성 아래쪽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답니다.
이때 체스키 크룸로프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바이에른 공국과 오스트리아 공국에서 이주한 독일인들이 대다수였는데요. 12~14세기 서부 독일의 농민들을 동부 독일로 이동 시켜 동독을 개척하고 독일화 시키는 ‘동방 식민 운동(Ostsiedlung)’의 영향 때문이에요. 12~14세기, 서독의 농민들을 동독 땅으로 이주시켰는데 당시 보헤미아 공국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주민을 많이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이 지역에는 많은 독일인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체스키 크룸로프에는 아직까지도 독일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답니다.
2. 체스키 크룸로프 성이란?
그럼 이제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1250년 경 이 마을의 영주들이 민둥한 돌산 위에 고딕 양식으로 된 성을 지었는데요. 그 중 가장 권력이 강했던 세들레르-프르치체 지역 출신의 귀족 비트코프치(Vítkovci) 가문을 대표로 내세웠어요. 그래서 비트코프치 가의 다섯 송이의 꽃이 체스키 크룸로프 성을 상징하게 되었죠.
성을 만든 비트코프치 가문은 1302년 멸문되어, 비트코프치 가문의 마지막 귀족이었던 독일계 가문인 로젠베르크 가에 성을 넘기게 됩니다. 새로운 성주가 된 로젠베르크 가문은 이후로도 300년간 이곳에 상주하며 성의 위쪽 부분을 새로이 축조하고, 마을을 평화롭게 다스리면서 체스키 크룸로프를 전성기로 이끌었다고 전해져요.
로젠베르크 가문이 떠난 이후에도 합스부르크 왕가 등 많은 왕실과 귀족의 소유가 되며 역사를 이어나갔답니다. 많은 가문이 거쳐갔던 성인만큼 성 안에는 다양한 가문의 문장이 남아 있어요. 라트란 거리의 건물들에도 몇몇 가문의 문양들이 남아 있으니 산책하면서 한 번 찾아보세요!
3.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내부
#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구조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크게 ‘성과 성 박물관’ ‘성탑’, 그리고 ‘정원’까지, 총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이 위치한 부지 내에는 무려 40채의 건물과 마을 전체 크기에 맞먹는 정원도 4개나 있으니 내부를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다면 서둘러 움직이는 걸 추천해요.
라트란 거리에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르면 성 입구가 나옵니다. 과거, 마을과 성을 구분하고 적들의 침입을 막았던 성의 해자를 관람하고, 성 내부의 건물들을 구경하면 돼요.
내부로 들어오면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명물인 성탑이 나오죠. 탑 꼭대기의 전망대에 오르면 아름다운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요.
전망 감상을 마치면 안으로 난 길을 따라 중정을 산책하면 또 다른 전망 명소인 망토 다리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인증샷 꼭 남기는 것 잊지 말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규모의 자메츠카 정원까지 산책하면 체스키 크룸로프 성 관람이 끝날 거예요.
# 해자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는 아주 특이한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 ‘해자’랍니다. 해자란, 동물이나 외부인으로부터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의 주위를 인공적으로 파서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해요. 몰래 침입해 오는 외적이나 도둑들을 구덩이에 빠트리고 한 번에 몰살시키는 덫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은 돌로 쌓은 뒤 창과 같은 날카로운 무기를 배치하거나, 하천을 흐르게 하여 물이 고이게 한 뒤 방어의 효과를 높였죠. 그런데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해자에는 창이나 물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인 ‘불곰’을 풀어두었답니다.
‘Bear Moat’이라고 불리는 체스키 크룸로프의 해자에는 1700년대부터 불곰을 풀어놓아 적의 침입을 막아 왔다고 전해지는데요. 이 곰들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에 살던 곰들로 성의 영주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갔다고 해요. 가끔 영주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여기에 던져서 먹이로 줬다는 소문도 있어요.
지금은 자신들을 보러 온 여행객들을 위해 자주 모습을 보여주는 온순한 곰들이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성에 왔다면 꼭 한 번 보고 가는 걸 추천합니다.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서 안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름 시즌에는 자주 나와 있으니 반갑게 인사해 봐요!
# 성탑
출처 / Media Storehouse
해자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오면 박물관이 있는 작은 광장이 나오는데, 이 쪽에서 성탑을 갈 수 있어요. 성탑의 외벽을 멀리서 보면 크기와 색이 다양한 벽돌로 오차 없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 같지만, 사실 모두 그림이랍니다.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스그라피토(Sgraffito)’라는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죠.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자주 사용하던 스그라피토 기법은 고대에 도자기와 벽 장식 등을 꾸밀 때 사용된 기법으로 벽에 다양한 색의 회반죽을 바른 뒤, 다 마르기 전에 앞서 발랐던 반죽을 긁어내며 입체감을 주는 방법입니다. 어렸을 때 무지개색으로 칠한 스케치북 위에 검정색을 칠한 뒤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며 그림을 그리던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중세 유럽, 흑사병의 창궐로 많은 인구가 사망하며 노동인력이 부족해졌고, 이에 따라 인건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화려하고 비싸게 작업해야 하는 바로크 기법보다 최소한의 노동력과 인건비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다 보니 이 스그라피토 기법이 다시 유행했다고 전해져요.
성탑은 현재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전망대에 오르면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요.
# 중정
이곳은 로젠베르크 가문이 성주가 된 이후 새로 축조한 윗성 부분입니다. 네모 반듯한 벽돌로 정갈하게 쌓여 있는 화려한 중정의 모습이지만 이곳 역시, 성탑의 외벽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벽에 그림을 그려 착시 효과를 주는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꾸며졌어요.
벽에 그려진 조각과 같은 그림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나 역사적인 인물을 주제로 하고 있고, 그리스 시대 건물들처럼 벽 장식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도 특징이랍니다. 그래서 더욱 균형 잡힌 건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건물을 잘 살펴보면 진짜인 척하는 가짜 창문과 가짜 발코니도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찾아보세요! 중정은 여러 곳으로 나누어져 있고, 바닥 아래에는 포도주 저장고나 감옥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하였어요.
# 자메츠카 정원
성곽을 따라 자메츠카 정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들어오면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로크식 극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극장과 정원을 이어주는 또 다른 전망 스팟인 망토 다리가 나오는데요. 블타바 강과 함께 성당과 도시의 전망, 그리고 성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인증샷 장소니 사진 찍는 것 꼭 잊지 마세요!
체스키 크룸로프 전망의 풍경을 즐기고 나면 잘 꾸며진 정원이 나오는데요. 과거에는 귀족들의 산책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나 지금은 여행객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조용히 거닐기 좋은 곳이에요. 자메츠카 정원은 장미가 유명하니 장미가 필 계절에는 정원의 장미를 구경해보세요!
체스키 크룸로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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