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과거 나치당의 전당대회가 열렸던 곳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중요한 증적 중 하나에요.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어요. 과거의 그림자와 현대의 교훈이 공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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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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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더 좋은 정보
뉘른베르크는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같은 독일의 대도시들과 비교할 때 규모는 작지만, 나치 시대에 매우 상징적이고 중요한 정치적·이념적 역할을 했어요. 단순히 크기나 인구가 아닌, 나치 정권의 이념 구현과 선전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컸기 때문입니다.
나치당 전당대회와 뉘른베르크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나치당은 뉘른베르크에서 매년 대규모 전당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히틀러는 뉘른베르크를 “제국의 도시(Die Stadt der Reichsparteitage)”로 공식 명명하며, 정치적 상징성을 강화했어요.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집단행사, 군중 퍼레이드, 선전 연설, 성대한 건축물 등이 뉘른베르크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졌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
1935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뉘른베르크 법률’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결혼 금지, 유대인의 시민권 박탈 등을 명문화했습니다. 이 법은 나치 인종정책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의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의 정당화 논리로 사용되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이 도시에 설치된 국제군사재판소에서 열렸어요. 이는 세계 최초의 국제 전범 재판으로, 전쟁범죄·인도에 반한 죄·평화에 대한 죄가 규정된 역사적 판례로 남았습니다. 국제법과 국제형사재판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도시 | 나치 시기 역할 | 특징 |
베를린 | 정치·행정 중심 | 나치 정부와 히틀러의 관저가 있던 곳. 국가 통치 중심지 |
뮌헨 | 나치당 탄생지 | 1920년 나치당 창립 / 히틀러의 쿠데타(1923년 뮌헨 폭동) 발생지 |
함부르크 | 항만·경제 중심 | 나치 해군·항공력의 중심. 군수산업 발달 |
뉘른베르크 | 상징·이념 중심 | 전당대회, 법률 제정, 전범 재판 등 상징적 사건이 모두 이곳에서 |
대장님의 팁
나치당원이었던 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약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로, 실존 인물, 흑백 촬영으로 역사적 분위기 재현,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어요.
히틀러 최측근 비서 트라우들 융게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의 히틀러와 측근들의 마지막 12일간을 묘사했어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도 묘사되지만, 전체주의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치 정권에 저항한 뮌헨 대학생 그룹 '백장미단(Weiße Rose)'의 실화, 실제 재판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어요. 주인공 소피 숄은 나치에 맞선 상징적 인물입니다.
전직 나치 수용소 경비원과의 로맨스를 통해 개인의 책임과 집단 범죄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원작 소설은 독일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기도 해요.
위치
함께 방문하면 좋을 장소
뉘른베르크 동물원 게르만 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