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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vs 피렌체

설명
천 년의 라이벌인 두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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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시에나
작성자
헤일리 TL
헤일리 TL
최종 편집자
헤일리 TL
헤일리 TL
최종 편집 일시
2024/07/1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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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피렌체와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시에나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구요?” 토스카나 지역을 대표하는 피렌체와 시에나는 과거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도시국가였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전쟁도 자주 벌였고, 각자의 도시가 더욱 강하다는 것을 뽐내기 위해 여러 번 경쟁 관계에 놓이기도 했죠. 하지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는 법. 결국 둘 중의 한 도시만이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고 찬란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요. 과연 어떤 도시가 승기를 잡았는지 우리 함께 알아볼까요?
목차
토스카나의 3대 도시
시에나 대성당
키안티 와인은 누구의 것?

1. 토스카나의 3대 도시

# 피사(Pisa)
피사는 중세 이탈리아의 중요한 도시국가 중 하나로 토스카나 지역의 첫 패권을 잡은 도시입니다. 아르노 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 해상 무역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으며 10~11세기 지중해 무역의 메카로 성장하여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중동 지역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죠. 또한, 피사는 십자군 전쟁에도 적극 참여하여 교황으로부터 무역 독점권 및 상인들의 자치권을 처음으로 승인받게 됩니다.
해상 무역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피사는 자신들의 권력을 자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필요했고, 이때 건축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세계 7대 불가사의, ‘피사의 사탑’입니다. 그 옆에는 당시 피사가 누리던 경제적 번영을 전시하는 듯 화려하고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피사 대성당도 만나볼 수 있죠.
# 시에나(Siena)
피사의 바톤을 이어받아 14세기 토스카나의 최대 도시로 성장한 곳은 시에나였습니다. 토스카나 중심부에 위치한 시에나는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십자군, 상인, 순례자 등 많은 사람들이 경유하며 활발한 상업 활동과 교역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죠.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무엇이 발달할까요? 바로 ‘금융업’입니다. 거대 상업도시가 된 시에나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시에나 은행(Monte dei Paschi di Siena)’을 설립하여 이탈리아 금융의 중심지로서 도시의 경제적 번영을 이끌어 냈습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근처에서 세력을 키우던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무참히 패배하게 되어, 시에나가 가장 찬란했던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간이 멈춰버렸죠.
# 피렌체(Firenze)
시에나의 영원한 앙숙이자 라이벌인 피렌체는 자타공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부흥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15세기, 시에나와의 길고 긴 접전 끝에 마침내 토스카나의 주인이 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의 통치 아래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아릅답고 우아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게 되죠. 이탈리아 전역에서 몰려드는 예술가와 그들을 후원해주는 가문, 이들이 만들어낸 르네상스 역사는 아직까지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해냈고, 상인 조합인 ‘길드’가 최초로 탄생한 곳이자 도시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두오모(대성당)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랍니다.

2. 시에나 대성당

# 성당은 늘 동쪽을 향해 짓는다?
쾰른 대성당, 독일 쾰른
일반적으로 중세 시대에 지어진 성당은 위에서 봤을 때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요. 이 십자가의 각 방향은 각각의 용도가 정해져 있는데, 유럽을 기준으로 하면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동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모든 성당의 제단은 동쪽을 향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와 마주보고 있는 서쪽에는 성당으로 들어오는 중앙 출입구가 위치해 있고, 빛이 많이 들어오는 남쪽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큰 광장이 연결되어 있죠. 그래서 보통 성당의 남쪽 광장은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며 시민들이 모이거나 시장이 열리는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되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늘하고 조용한 북쪽에는 사제들이 지내는 회랑인 ‘클로이스터’가 있답니다.
시에나 대성당 역시 화려하고 웅장한 서쪽 출입구와 동쪽을 바라보는 제단, 그리고 북쪽의 클로이스터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성당의 남쪽을 보면 광장이 위치해야 할 곳의 생김새가 약간 이상해 보일 거예요. 이 부분이 바로 시에나의 영원한 앙숙인 피렌체와 관련이 있는 곳이랍니다.
# 피렌체와의 끝없는 경쟁
시에나 대성당, 이탈리아 시에나
1196년, 시에나는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자신들의 예술적·종교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대성당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됩니다.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에 섬세하고 정교한 파사드와 색색깔의 대리석 장식을 더하는 등 약 200년 간 여러 번의 확장과 개축을 이어나갔죠.
그러던 14세기 중반, 피렌체 대성당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쿠폴라(돔)를 올린다는 소식을 들은 시에나는 이에 질 수 없어 다시 한번 증축 공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두오모 누오보(Duomo Nuovo)’라고 불리던 이 프로젝트는 시에나 대성당을 유럽에서 가장 큰 교회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성당은 원래 규모의 3배에 달하는 크기로 증축될 예정이었죠.
시에나 대성당의 도면
남쪽 광장 쪽을 확장한 예상도
하지만 이미 몇 백년간 유지되어 온 성당을 무너트리고 새로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래서 시에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계획을 수정하여 기존 건물의 측면에 새로운 본당을 덧대어 확장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지금의 서쪽 출입구를 십자가의 짧은 축으로 두고, 남쪽 편의 축을 길게 늘리면 오른쪽으로 90° 돌아간 십자가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현재 시에나 대성당의 뒷편을 보면 거대한 벽과 기둥들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를 위한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완성되지 못 한 채 버려져 있는 모습이죠. 과연 시에나 대성당은 왜 완공되지 못했던 걸까요?
# 유럽에 찾아온 불청객, 흑사병
1348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갑니다. 시에나 역시 이 참혹한 폭풍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요. 이탈리아 중에서도 시에나가 가장 큰 타격을 입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는 등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되었죠.
시민들의 죽음은 곧 시에나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도시의 황폐화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더이상 일할 인력이 없기 때문에 성당의 증축 공사 역시 자연스럽게 중단되었어요. 시에나에 영광을 가져다 줄 줄 알았던 성당의 증축 공사는 그렇게 끝맺음되지 못한 채, 흑사병이 퍼졌던 그 순간 그대로 멈춰 아직까지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답니다. 중세 시대의 유적을 잘 보존하고 있는 시에나는 199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지만, 사실 그 이면에 있는 역사는 아픔으로 가득차 있는 셈이죠.
만약 흑사병이 발생하지 않아 대성당이 다 지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지금쯤 피렌체를 ‘소도시’라고 부르고 있을 수도 있겠죠. 혹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에나에서 시작되었거나 어쩌면 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역사는 바뀌는 법이니까요.

3. 키안티 와인은 누구의 것?

# 토스카나 최대 와인 생산지, 키안티(Chianti)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키안티’는 토스카나 지역의 최대 와인 생산지로,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키안티 와인이라고 불러요. 토스카나는 로마 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한 기록이 있으며 13세기에 이미 이곳의 와인이 지역의 유명 특산물이 되어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토스카나의 지중해성 기후 때문인데요. 여름에는 건조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날씨로 포도의 당도와 산도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높은 산도와 적절한 타닌, 그리고 풍부한 과실향과 당도를 자랑하는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이 자라기에 적합했던 것이죠. 이 산지오베제 포도는 키안티 와인의 주된 포도 품종으로, 키안티 와인의 특징인 높은 산도와 균형 있는 바디감을 만들어 준답니다.
#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키안티 와인 중에서도 가장 중심지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와인을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고 부릅니다. ‘클라시코’는 이탈리아어로 ‘표준의, 전통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즉, 전통적인 ‘원조’ 키안티를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부르는 것이죠.
키안티 와인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짐에 따라 키안티 지역 뿐 아니라 근처의 다른 토스카나 마을에서도 산지오베제 포도를 재배하여 키안티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위 지도상 붉은 부분에 해당하는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과 회색 부분에 해당하는 ‘키안티 지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구분하기 위해, 키안티에서 생산한 와인을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부르고, 병목 부분에 검은 수탉마크를 붙여 판매하고 있답니다.
# 검은 수탉(Gallo Nero) 마크
그렇다면 왜 키안티 클라시코에는 검은 수탉(Gallo Nero) 마크가 붙는 걸까요? 그 이유는 역시나 시에나와 피렌체의 경쟁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과거 시에나와 피렌체는 두 지역 사이에 있는 키안티 지역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국경 전쟁에 지쳐가던 중,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었던 두 국가는 묘안을 생각해냈죠. 바로 각각의 도시에서 동시에 수탉을 출발시킨 뒤 그 둘이 만나는 지점까지를 서로의 국경으로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피렌체는 검은 수탉을, 시에나는 흰 수탉을 준비해 경주를 벌였고, 경주가 열리던 당일,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일어난 피렌체의 검은 수탉이 더 많은 거리를 달렸죠.
그렇게 키안티는 피렌체의 영토가 되었고 지금의 키안티 클라시코 병목에는 이를 상징하는 검은 수탉 마크가 달리게 되었답니다.

시에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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